2017년 12월 13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이사 40,25-31
25 “너희는 나를 누구와 비교하겠느냐?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거룩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고 보아라. 누가 저 별들을 창조하였느냐? 그 군대를 수대로 다 불러내시고, 그들 모두의 이름을 부르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능력이 크시고 권능이 막강하시어,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27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 28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 29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30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31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복음 마태 11,28-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저는 인터넷 안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했습니다. 2001년부터 글을 쓰면서 활동했기 때문에 벌써 17년이라는 시간을 ‘빠다킹 신부’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안에서 산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인터넷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카페에는 16,000명이 넘는 사람이, 페이스북이나 밴드 그리고 카카오스토리 등의 SNS 사이트에서도 몇 천 명의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들과 과연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요? 솔직히 전혀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종종 E-mail을 통한 상담을 청하십니다. 처음에는 이에 대한 답변도 해드리면서 도움을 드리려고 했지만, 상담이 메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상담은 서로 마주 앉아 주고받는 대화가 있어야 하는데, 메일은 한쪽의 일방적인 말을 듣고 저 역시 일방적인 대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요즘에는 메일을 확인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고 채팅 창을 열어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지요.
성지에서 미사를 마치고 가시는 분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어떤 분께서 제게 “신부님, 제가 신부님 글을 15년째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이 분을 알고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15년이면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닌데도 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런 부분들이 참으로 아쉬운 부분입니다. 많은 연결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전혀 알지 못하는 혼돈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의 박해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또한 정보의 홍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약간의 검색만으로도 주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얼마나 주님을 알고 있을까요? 단순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일까요?
오늘 주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라는 위로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분명히 우리와 주님은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주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커다란 힘이 되는 분들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연결되어만 있을 뿐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연결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일방적인 연결만으로는 절대로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 삶에서 커다란 위로와 힘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제대로 알고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분의 말씀을 삶 안에서 실천하면서 진정한 연결의 관계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렵고 힘든 세상 안에서 위로와 평화의 한 줄기 빛으로 오시는 주님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한 개의 촛불로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의 촛불의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탈무드)
너 자신을 알라.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많은 말을 합니다. 그런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너무나 어색해 하는 것 같습니다. 내 자랑을 늘어놓는 것은 아닌지, 자기 PR 시대라고는 하는데 나를 숨기는 것은 아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당황스러워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내 자신이 어떤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한 번은 친한 친구가 제게 이렇게 묻더군요.
“나는 어떤 사람이야? 내 장점이 뭐 인 것 같아?”
“너에 대해 왜 내게 물어보니? 네가 너를 모르면 누가 너를 알아?”
이 친구는 솔직히 자기가 어떠한 지를 잘 모르겠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남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물어본다는 것입니다. 이 친구의 행동이 조금 이해가 됩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저 역시 종종 깨닫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지만, 이는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이렇게 내 자신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잘 아는 것처럼 판단하고 단죄할 수가 있을까요?
오늘은 의정부교구 화정동 성당에서 두번째 대림 특강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