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5일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이사 48,17-19
17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 를 인도하는 이다. 18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9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복음 마태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저의 어떤 행동을 보고서 한 친구가 깜짝 놀라면서 말리는 것입니다. 검정색보다 빨간색이 더 예쁜 것 같아서 빨간색 볼펜으로 이름을 쓰고 있었거든요. 말리는 친구는 빨간 색으로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이 아프거나 죽는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얼른 지우고 다시 검은색으로 이름을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쓴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들었던 말 때문일까요? 미신인줄 알면서도 쓰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생활 속의 미신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시험 전에 미역국을 먹지 말라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신발을 선물하지 않는 것, 방에 들어갈 때 문지방을 밟지 않는 것, 손톱과 발톱을 밤에 깎지 않는 것, 밤에 휘파람을 불지 않는 것 등등.... 이 공간을 온통 미신에 관한 말로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많습니다.
이런 미신들은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요? 혹시 아십니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이 만든 것을 생활 안에서 얼마나 믿고 따르고 있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이 만든 것은 믿고 따르면서, 정작 우리 삶 안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주님의 말씀은 왜 믿고 따르지 않을까요? 더군다나 주님의 말씀은 말이 되지 않는 미신이 아닙니다. 삶 안에서 실천함으로 인해 더 큰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의 핵심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실천함으로 인해서 커다란 손해를 볼까요? 물론 물질적인 손해를 본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손해는 한 순간일 뿐 영원한 손해는 결코 아닙니다.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얻게 됨을 자주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말도 듣지 않고, 당신의 말씀도 듣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지적하십니다. 금욕주의적인 생활을 했던 세례자 요한을 향해서는 마귀가 들렸다고 말하고, 사람들과 먹고 마시는 모습을 보고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말한다는 것이지요. 세례자 요한의 말을 듣고 믿었다면 분명히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다면 분명히 사랑이신 하느님을 느끼면서 더욱 더 기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불만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니 어떤 말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느님이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습니다.
쓸데없는 것은 믿고 따르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믿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사랑이라는 정말로 중요한 가치를 말씀하시고 직접 당신의 모습으로 보여주신 주님을 믿고 따르면 분명히 더 큰 은총의 선물을 받습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으로 머리가 가득 차서 남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라 로슈코프).
나누면 더 많이 받습니다.
요즘에 대림특강을 다니느라 조금 바쁩니다. 그런데 강의 전에 본당신부님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러한 말씀을 종종 하십니다.
“저희 본당신자들 반응이 별로 없어서 힘들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도 반응이 없다니까요.”
이렇게 반응이 없다는 신자들이 저의 강의 때에는 열렬히 호응을 해주십니다. 제가 호응을 보이는 분들에게 계속해서 초콜릿이나 젤리 등의 선물을 드리거든요. 그래서 그 본당신부님께서는 강의 후에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우리 본당신자들이 이렇게 반응이 좋을지 몰랐습니다. 이제까지 초콜릿이나 사탕은 아이들에게만 주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른들에게도 드려야겠어요.”
무엇인가를 드리면 상대방은 좋아합니다. 하지만 몇몇 분들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이런 말씀을 하세요.
“신부님, 신부님 월급도 많지 않을 텐데 그 많은 선물들을 어떻게 주시는 거예요?”
제게 이러한 작은 선물을 받으신 분들이 나중에 다 보내주십니다. ‘강의 때에 써 주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직접 만든 묵주를 보내주시기도 하고 직접 성경 글귀를 써서 책갈피를 만들어 보내주십니다. 또 여기에 상당히 많은 초콜릿과 젤리, 사탕 들이 들어옵니다.
어떻습니까? 나눠주는 것이 손해일까요? 아닙니다. 반응이 좋아서 좋고, 여기에 더 많은 것을 받아서 좋습니다. 나누는 것은 큰 이득입니다.
오늘은 서울대교구 도봉동 성당 대림특강 두번째 시간입니다.